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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욱이 ‘계’탄 날 - 김민수 관장아저씨와 함께한 1박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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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원장애인복지관
  • 조회 1,355
  • 입력 2013-08-05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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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욱이 ‘계’탄 날 - 김민수 관장아저씨와 공준익 아저씨와 함께 1박 2일!!!

상욱이가 ‘계’를 탓다. 모처럼 완전 상욱이의 날 이었다.

소원이든 1박2일처럼 텐트에서 하룻밤을 자 보고, 또 집 앞의 강에 가서 낚시해서 고기도 잡고(약 30cm 정도의 송어도 잡아와서 구워 먹었다.), 강가에서 라면도 끓여 먹었다. 완전 소원을 푼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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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관장과 상욱이 겅준익 선생

 

 

지난 6월에 ‘캠프 아라리’에 관심이 많은 공준익 씨와 평택대 재활복지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김성회 교수가 방문을 한 뒤로 공준익 선생이 정선의 별을 보러 온다는 이유를 달아 정선으로 왔다. 장마 끝자락에 하늘은 흐렸고 간간이 비가 뿌렸다. 결국 하늘의 별은 못 보았지만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로 vision과 희망의 별을 가슴에 심고 돌아갔다.

 

공준익 씨는 우리나라 사회적 기업이 태동도 하기 전에 사회적 기업인 ㈜신형전자를 운영하여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만들고 아이들의 취업과 공동체에 관한 구상을 실현해 나가는 일을 시작했었다. 결과는 냉혹한 기업의 현실과 장애인의 취업에 대한 기본토양이 준비가 덜 된 문제로 인해 결과는 좋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는 용감하게 추진했었고 그런 현실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같이 오셨던 김민수 관장은 현 수원시 장애인 종합복지관 관장이며 경기도 장애인 복지시설 연합회 회장. 경기도 장애인 복지관 협회 회장, 도립 장애인 종합복지관 운영 위원장 등의 굵직한 직함들을 가지고 있는 장애인 복지에 관한 전문가 였다. 

 

함께 오기로 했던 김성회 교수는 마침 다른 일이 있어 못 왔지만 이 두 분이 오셔서 ‘캠프 아라리’에 대한 비젼과 가능성,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전문가들답게 정부 정책의 방향과 앞으로 변화하는 복지의 개념 그리고 진정 이아이들 복지의 정점은 어디일까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나를 굉장히 고무 시켰다. 

 

바쁜 업무 중에 휴가마저도 ‘캠프 아라리’ 이야기로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날 일정을 위해 자자는 시간이 새벽 3시30분 이었다. 그 다음날인 8월2일 부터가 상욱이의 날 이었다. 느즈막히 일어난 아저씨들을 따라 강가로 간 상욱이는 자기가 아저씨들을 잘 책임 질 테니 아빠는 집에 가서 쉬라고 한다. 뭔가 조금 수상 했지만 서울 병원에 간 상욱 엄마의 부재로 내가 손님들의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으로 먼저 왔다. 저녁 준비로 우리 집 토종닭으로 만든 ‘뼈 없는 닭 매운 볽음’을 준비하고 쉬고 있는데 밖이 부산하다. 흥분한 상욱이의 음성이 무슨 일이 있는 듯 해 나가보니 송어를 잡았단다. 얼추 커 보이는 송어를 든 아저씨와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웃고 있는 상욱이를 보았다. “아빠 큰 고기 잡았어. 아저씨와 내가~” 한 30cm는 되어 보이는 송어를 든 개구쟁이 3명이 낄낄 거리고 들어온다.

얼마 전 보건소에서 들은 지식에 송어구이를 해서 ‘뼈 없는 닭 매운 볽음’과 저녁을 먹었다. 무척들 맛있어 했다. 내가 토종닭 레시피를 연구하고 있는 데 그중 하나라고 하니 생활 작은 하나하나가 다 ‘캠프 아라리’ 준비 작업이라는 찬탄과 공감을 한다.

 

저녁 후 집 앞 데크에 텐트를 쳤다. 김민수 관장과 상욱이는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지 거실에 있는 내가 궁금해 잠이 오지 않는다. 낄낄 거리며 쫑알대는 상욱이, 그걸 다 받아주며 같이 웃어주는 김 관장, 지난밤의 피로에 벌써 방에서 골아떨어진 공선생, 조금씩 내렸다 멈췄다 하는 빗소리, 정선의 산골에서 느껴지는 장마 끝자락 한여름 밤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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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욱이와 김민수 아저씨의 캠프

 

 

다음날 아침 식사 후 김관장이 다시 ‘캠프 아라리’이야기를 꺼냈다. 그 전날 프린트해 주었던 마스트 플랜을 가지고 이야기가 시작 되었다. 김 관장의 이야기는 “그림의 요건은 충족 된 것 같습니다. 밤새 생각 해 보니 기능성이 꽤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상욱이네 가족이 혼자하기에는 너무 큰 프로젝트라 생각 합니다. 먼저 핵심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TF 팀이 만들어져 구체적인 전체 계획과 추진 일정, 각 분과별 진행방법 등을 먼저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말씀을 한다. 공 선생 또한 “50대 50입니다. 성공 확률은 그런데 그 정도 면 꽤 높은 확률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한다. “역사를 보면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민(백성)’ 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복지 관련되어서는 우리 가족들이 ‘민’입니다. 정책을 만들거나 집행하는 사람들은 먼저 우리들을 교육 시켜야 하고 우리가 자각해서 움직일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방향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라는 나의 이야기를 끝으로 우리는 2박3일의 급작스런 세미나?를 마쳤다.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배웅을 하고 상욱이와 집으로 오는 길에 피로가 묵직하게 밀려 왔다. 보람찬 2박3일, 가장 알찬 내용이 오갔던 날 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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